
【뉴스라이트 = 조용은 기자】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은 여산송씨 호봉공종회로부터 〈선조어서송언신밀찰첩〉, 〈정조어제선조어서밀찰발〉 등 중요 유물 5건을 기증받는 기증식을 열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기증에는 국가지정문화유산 3건과 경기도유형문화유산 1건이 포함되어 학술적·문화유산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기증 유물에는 선조가 송언신에게 내린 밀찰을 엮은 〈선조어서사송언신밀찰첩〉, 정조가 선조대의 왕명 문서를 검토하여 남긴 어제인 〈정조어제선조어서밀찰발〉, 자식이 없던 송언신에게 자식을 입양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문서인 〈예조입안〉 등 국가지정문화유산 3건이 포함된다. 또한 경기도유형문화유산인 〈여산송씨 족보〉와 〈송준 초상〉 등도 함께 기증되어 총 5건 8점이 박물관에 소장된다. 경기도박물관은 이번 기증이 조선 왕실과 문신 가문의 교류 관계, 가족제도, 송언신의 가계 연구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확보한 것이라며 의미를 전했다.
송언신(宋言愼, 1542-1612)은 본관이 여산(礪山)이며, 자는 과우(寡尤)이고 호는 호봉(壺峰)이다. 157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과 정언 등을 거쳐 대사간·병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했다. 함경도관찰사 재직 당시 북방 방어에 유의하고, 수령들을 적절히 통솔한 것으로 보이나, 여러 차례 간관들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임진왜란 중에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됐으며 이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이 남아 있다.
특히 〈선조어서송언신밀찰첩宣祖御書宋彦愼密札帖〉은 선조가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에서 1599년까지 6년간에 걸쳐 함경도관찰사 송언신에게 내린 친필 서찰이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중 왕의 자녀 3인을 찾아 보호해 달라는 내용과 군신간에 선물을 주고 받은 목록 등이다. 이는 단순히 안부를 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전쟁의 상황, 북변의 방어 등 국방에 관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또한 당시 군신간의 사신 내왕, 선물 교환 등의 연구와 선조의 신하 관리 방식 등도 아울러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정조어제선조어서밀찰발正祖御製宣祖御書密札跋〉은 정조가 1794년에 송언신 후손가에 소장된 선조 밀찰을 보고 나서 소감을 적은 글로 선조 어찰의 성격과 내용을 해설, 평가하는 중요한 자료다.
〈예조입안禮曹立案〉은 1585년 예조에서 당시 병조정랑인 송언신에게 발급한 문서로서, 송언신이 자식이 없어서 10촌형의 둘째 아들 송준(宋駿, 1564-1643)을 후사로 삼겠다는 것에 대해 예조에서 이를 허가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조선 전기 가족 제도의 실제 운영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경기도유형문화유산인 〈여산송씨 족보〉는 상하 2권 2책의 목판본으로, 1606년에 송언신의 서문을 시작으로, 1651년 여이징(呂爾徵), 1653년에 송시길(宋時吉)이 쓴 서문이 차례로 실려 있다. 자녀 출생 순서대로 기록하는 조선 전기 족보의 특징이 나타나며, 당시 장자 중심 상속제도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송준 초상〉은 한 장의 종이에 먹과 옅은 색으로 그린 족자 3점으로 구성되며, 1920년에 편찬된 송준의 문집〈성암공유고〉에 따르면 송준이 60세 되던 1623년에 제작된 것이다. 처음에 한 점을 그린 뒤, 다른 자손들의 요청으로 ‘취한 모습(醉顔)’과 ‘화난 모습(怒顔)’의 초상을 추가로 그렸다고 전한다. 실제 초상화를 살펴보면 거의 같은 모습의 두 초상화 중 하나는 얼굴과 몸에 옅은 홍색을 칠했고, 다른 하나는 아주 흐리게 색칠했다. 약간 차이가 나는 또 다른 한 점은 인상을 찌푸린 듯한 표정이다. 따라서 세 점의 초상화를 각각 평안(平顔), 취안(醉顔), 노안(怒顔)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17세기 초에 제작된 초상화 초본으로 희소성과 예술적 가치가 높다.
송덕용 여산송씨 호봉공종회장은 “이번 기증은 후손의 책임을 넘어, 우리의 기록을 시대와 나누는 일”이라며 “오랫동안 문중에서 소중히 보관해 온 유물들이 연구자들과 국민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이번 기증이 앞으로의 학술 연구에도 기여하길 기대했다.
경기도박물관은 이번 기증을 한 가문의 기록이 공공의 지식으로 확장되는 중요한 사례라 평가하며, 유물의 학술적·문화적 가치를 적극 연구·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훼손 상태가 심한 초상화 등을 보존 처리 후 전시를 통해 공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